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라!
본문: 창세기 22장 1-12절
올해 아내가 임신해서 이제 겨자씨만큼 아주 조금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어젯밤에 자기 전에 아내의 배에 손을 대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자려고 누웠습니다. 잠들려고 하는데 아내가 갑자기 웃는 거예요. 태동이 느껴진다고요. 지금 21주차인데 아기가 태동하는 걸 이번 주초에 딱 한 번 느꼈거든요. 그런데 어제는 지난번보다 많이 움직이더라고요. 아이가 움직이는 걸 손을 얹고 느껴보았는데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아직 이 세상에 나오지도 않았고 그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데 아이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이것이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나오는 아브라함에게는 저희보다 훨씬 애타게 기다려왔고 그만큼 사랑스러운 아들 이삭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수십 년을 기다려왔고 요즘 시대면 죽었을 나이인 백 세에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자라는 동안 얼마나 애지중지하며 사랑으로 키웠을까요? 아브라함에게는 자기 목숨보다 더 사랑스러운 아들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이삭을 주신 후 십여 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를 부르셔서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번제는 제물을 온전히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제물의 각을 뜨고 그걸 태워서 드리는 제사인데 이 명령은 이성적으로는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너무 지나쳐 보이는 명령이고 하나님이 하실 명령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들입니다. 이스마엘로 인해 근심하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태어나는 사람이 너의 씨가 될 것이다” 말씀하셨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도 귀한 아들인데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들었을 때는 누구나 반문할 것입니다.
“네? 하나님 제가 잘못 들은 거죠? 아니죠? 하나님 이게 말이 되나요?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신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요? 줬다 뺏으실 거면 아예 주시지를 마셨어야죠!!”
충분히 이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하나님께 어떤 질문을 하거나 그 명령에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순종했는지 3절 말씀 같이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하나님이 지시한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에 그저 순종하여 지체하지 않고 출발했습니다. 분명 밤새 많은 고민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일단 자기의 생각은 내려놓고 순종을 택했습니다.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하나뿐인 아들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을 향해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셨던 곳은 아브라함이 살던 곳에서 3일 정도 길을 가야 하는 거리였습니다. 3일이라는 시간 걸으면서 아브라함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엄청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제가 하루에 가장 많이 걸어본 게 군대에서 40km 행군할 때였습니다. 저는 보병이라 기본적으로 모든 훈련에 행군이 탑재되어 있었습니다. 차라리 다른 훈련을 받는 게 낫지 행군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군장이 무거워서 어깨 아프죠, 총도 처음엔 군장에 비해서 가볍다고 느껴져서 별로 무게가 안 느껴지는데 나중에는 버리고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중 가면 다리도 아프고 발에 물집도 잡혀서 걷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40km 행군이면 최소 10시간은 걸어야 하거든요. 진짜 걸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실 때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부모님들이 사회생활 하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은 이런 삶의 무게를 견디고 벌어오시는 거구나’ 이런 잡다한 생각을 다 하면서 걷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무거운 삶의 문제에 직면한 상태에서 3일을 걸어갔습니다. 아무리 나귀에 짐을 얹고 가벼운 몸으로 3일 길을 간다고 한들 그의 몸이 가벼웠을까요? 천근만근이었을 것입니다. 육체는 정신이 지배한다고 하죠. 정신이 너무나도 힘든 상황인데 그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3일을 가면 몸도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묵묵히 순종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이겨내고 모리아 산에 도착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거의 다 와서 종들을 머물게 하고 이삭과 함께 하나님을 경배하러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에 대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죽이더라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믿은 것 같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 말씀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아브라함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실 능력도 있으시니, 설령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더라도 능히 살리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손에 들고 함께 산을 올랐습니다. 번제에 사용할 나무를 이삭이 지고 갔다는 것을 보았을 때 이삭은 청소년의 나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삭이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아버지!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는데 번제로 바칠 어린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들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셨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에 이르러 아브라함은 거기서 단을 쌓고 나무를 가지런히 놓은 후 이삭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아들아, 하나님께서 너를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셨다.”
이삭이 이런 말을 아브라함에게 들었을 때 어땠을까요? 너무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아버지가 장난치시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반항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의 장작 위에 눕혀 놓았는데 반항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삭 또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잘 믿고 경외하던 사람이었던 거죠. 하나님의 뜻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막지 않으셨다면 아들 이삭을 정말 번제로 드렸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하고 두 번 부르면서 굉장히 다급하게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아브라함이 실제로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삭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코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을 잘 통과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않았기 때문에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믿음은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비록 그가 외아들 이삭을 매우 사랑했지만, 그는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경외했고 하나님을 사랑했으며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서 두 가지를 삶에 적용하길 원합니다.
첫째, 아브라함처럼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경험하자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정도로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사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바치려고 한 아브라함을 위해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보니 숫양 한 마리가 수풀에 뿔이 걸려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숫양으로 이삭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립니다.
‘아들을 바쳐라!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나에게 주어라!’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명령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저항하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린양을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만일, 아브라함 또는 이삭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최소한 창세기 말씀 안에서는 우리가 기대하는 여호와 이레 하나님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인디언 추장을 뽑는 과정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추장의 아들 중에 한 아이를 선택하고자 여러 과정의 시험을 거치게 됩니다. 그 중 한 시험은 아이가 아주 가파른 낭떠러지에 앉아서 밤을 새우는 것입니다. 그 깊은 산중에 맹수들이 으르렁거리며 공격하려고 부스럭부스럭하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두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긴장감을 이겨내고 밤을 새워야 합니다. 추장의 아들은 밤새 두려움과 싸우며 동이 틀 때까지 견뎌냈습니다. 이윽고 동이 트고 새벽이 되었을 때 모든 시험 관문을 통과했다는 희열을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서서 집으로 가려고 하였을 때 어떤 남자가 숲속에서 자신을 향해 활을 겨누고 있었습니다. 화들짝 놀란 아이는 “누구세요?”하고 물으며 자세히 얼굴을 보니 자기 아버지였습니다. 그 순간 추장은 활시위를 놓았고 화살이 그 아이의 머리를 지나쳤습니다. 아들은 큰소리로 “아버지 저예요!”라고 외치며 땅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들이 뒤돌아보니 나무 위에 있던 맹수가 추장이 쏜 화살을 맞고 땅에 떨어진 것입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아들을 향해 아버지가 뛰어왔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대견하게 여기며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들이 시험에 통과하고자 밤을 꼬박 새울 때 아버지는 아들의 주변에서 활을 겨누고, 맹수들이 아들을 공격할까 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며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고 계십니다.
우리도 시험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분명히 이 상황에서는 내가 손해를 보고 고통을 당할 수 있는 상황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데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우리를 방치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적의 플랜을 가지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순종하면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아브라함의 순종처럼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우리가 되길 소망합니다.
둘째,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순종할 때 복 주심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절대 순종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나님은 복을 선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시면서 복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번성케 될 것이고 복되게 하실 것이라 약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떤 대적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막아내지 못할 만큼 강한 민족으로 성장케 하실 것이라 약속해주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브라함을 통해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결국 아브라함의 순종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구원의 복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받는 복에 대해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어디서든지 복을 얻고, 자녀의 복도 얻고, 소득의 복도 얻고, 양식의 복도 얻게 된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기업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랜드의 박성수 장로님은 이런 순종의 복을 누리신 분이었습니다.
처음에 500만 원으로 신촌 로터리 앞에 있는 2평짜리 가게를 얻어 옷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개업 예배를 드릴 때 박 장로님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가게를 운영하기로 서약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저는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하나님 절 도와주셔서 이 사업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익을 선교에 사용하겠습니다. 하나님 500만 원으로 시작된 이 사업이 10년 후에 1,000억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사업을 하였습니다. 기도로 시작하여 기도로 끝났으며 십일조 생활과 주일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이렇게 사업을 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해 주셔서 그에게 개업 예배 때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사업을 시작한 후 10년 후인 1989년에 정확히 1,000억이 되었고 그 뒤로도 사업에 복을 주셔서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붙들어주시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복을 누리는 것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아시고 풍성하게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자녀의 복을 원했고 하나님은 그것을 차고 넘치게 채워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 주시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는 어디서든지 복을 얻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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