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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QT설교] 우리아의 죽음으로 인해 드러난 다윗의 연약함, 삼하 11:14-27 (10월 5일)

나는 PRAYER 2022. 10. 5.

우리아의 죽음으로 인해 드러난 다윗의 연약함

본문: 사무엘하 11장 14-27절

 

정말 믿음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율법의 모든 내용을 다 지키고 온전히 행하여 예수님이 필요 없는 사람일까요? 아니면 늘 말씀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나의 죄인 됨을 깨닫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며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는 사람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홀로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완벽하지 못한 존재들입니다. 늘 무엇인가 부족해서 결핍을 느끼고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부자라고 해서 모든 것이 충족된 삶을 살아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돈이 있으면 돈으로 채울 수 없는 것을 갈망합니다. 명예, 권력, 쾌락, 행복, 기쁨 등 인간의 욕구는 내게 없는 것들을 계속해서 채우고자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죄를 짓기도 하죠.

 

그렇다면 믿음이 뛰어난 성경의 인물들은 완벽한 삶을 살았을까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렸던 아브라함은 완벽한 사람이었을까요? 이스라엘의 최고의 지도자였던 모세는 완벽한 사람이었을까요? 이스라엘 역대 최고의 왕이며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여 수많은 시편을 남긴 다윗은 완벽한 삶을 살았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모두 우리와 같이 연약한 부분이 있는, 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는 다윗의 연약함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죄에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다윗의 모습이 나옵니다. 다윗은 자신의 충신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불륜에 빠집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고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권력에 취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지른 것이죠. 그러나 다윗은 한 번의 실수일 뿐이고 우리아는 전장에 나가 있는 상황이니 조용히 이 일이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문제는 밧세바가 임신했습니다. 밧세바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없던 일처럼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지만 그것이 실패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전장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서 밧세바와 동침 시키기 위해 집으로 보내보기도 하고 술에 취하게도 해서 집으로 보내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아주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며 전우들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전쟁 중에 아내와 함께하기를 거부합니다. 결국 다윗의 작전은 실패한 것이죠.

 

죄는 죄를 낳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해 또 다른 죄를 짓습니다. 전장에서 우리아를 가장 치열한 곳으로 보내고 최전방에 서게 하여 죽게끔 유도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입니다. 다윗의 군대장관 요압을 통해 이런 은밀한 작전을 수행하게 했고 결국 우리아는 이스라엘을 위해 최전방에서 열심히 싸운 결과 죽게 되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자기 손에 직접 피를 묻히지 않았을 뿐 우리아는 분명 다윗에 손에 죽은 것입니다. 다윗이 죽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에서 최고의 왕이라 불리는 다윗의 이면을 보면 너무 처참합니다. 어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죠?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이 맞나요?

 

그런데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 사람도 다윗이고, 추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다윗입니다. 둘 다 한 사람이 행했던 모습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에게 연약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전진하던 다윗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했던 다윗이지만 순간의 탐심을 참지 못하고 충신의 아내를 취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리고 죄를 덮기 위해 살인 청부까지 해서 충신을 죽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의 연약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야라고 불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법 없이 살 수 있을 만큼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존경받을만한 사람도 그의 내면에는 어떤 연약함이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 겉으로 보이는 삶 이면에는 어떤 죄가 그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만 아실 뿐이죠.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연약한 존재이기에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내 신앙과 믿음이 아주 뜨겁고 활활 타오른다고 해서 내일 신앙의 슬럼프를 겪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을 겪을지 알 수 없고 그 일로 인해 우리의 마음에 시험이 찾아올지, 죄의 유혹에 넘어갈지 절대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다윗보다 뛰어나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없습니다. 다윗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나요? 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무너짐을 보고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도 저런 연약함이 있음을 고백하고 인정할 때 깨어서 죄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연약하기 때문에 주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했다면 사실 주님이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께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자주 빠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다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노력과 행위로 하나님께 선함과 의로움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다윗도 죄에 빠졌는데 그보다 더 나을 것 없는 믿음을 소유한 우리가 무슨 능력으로 하나님께 의로움을 인정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우리 주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에 꼭 필요합니다.’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영원토록 죄의 형벌을 받으며 살아가야 할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우리의 인생은 180도 변했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었더니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은혜를 입게 하십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필요가 없습니다. 너도 죄인, 나도 죄인. 우리 모두가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찬양하며 감사하면 되는 것이죠.

 

오늘 하루를 시작하며 기도하며 나아갈 때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내 삶에 주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고백하길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길 원합니다. 그리하여서 주님과 함께 믿음의 걸음을 걸어 무너지지 않고 믿음 위에 굳게 서는 복된 인생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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